[📚 북적북적] 2. 지구 끝의 온실 (김초엽)

 

🌿 지구 끝의 온실 (김초엽) - 자이언트 북스

 

지구 끝의 온실 - 예스24

 

 

 

오랜만에 한국 SF 소설을 읽었다.

요즘에는 전공 도서와 지식을 전달하는 글만 주로 읽다가, 최근에 독서와 기록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달아 책을 열심히 읽어보고자 마음 먹고 고른 책이다.

 

 

 

이 책은 전체로서,

- 더스트 시대 -

사람과 동물이 숨을 쉴 수 없는, 더스트 시대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재건해낸 지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더스트 시대는 말 그대로 공기 중에 더스트라는 위독 기체가 퍼져 있는 시대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스트에 노출이 되면 서서히 죽어간다.

터스트에도 피해를 입지 않는 내성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이 더스트라는 물질은 어디에서 파생이 되었는지 알 수 없고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돔이라는 마을을 형성해 살거나 사냥꾼이 되어 폐허를 뒤지거나 다른 사람을 사냥하며 생존한다.

 

더스트 시대의 나오미와 그의 언니 아마라가 더스트 시대에서 사냥꾼과 사람들을 피해 도망치다가, 내성을 가진 사람들의 모여 사는 곳이라 소문이 도는 프림 빌리지를 우여곡절 끝에 찾아간다. 그곳에서 군인 및 기계 정비 역할을 담당하는 지수씨, 먹을 수 있는 식물을 연구하는 식물학자이자 반기계인간 레이첼을 비롯한 많은 동네 사람들을 만난다.

처음에는 마을에서 주어진 업무를 하면서 하루하루 마을 사람들과 정을 쌓으며 살아가지만 사냥꾼으로 부터의 침입, 더스트 폭풍 등의 시련을 겪으며 평화롭던 프림 빌리지는 파괴된다.

 

마을이 파괴될 때 마을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마을이 망할테니 다른 마을과 협상할 만함 기술(식물 종자)을 가지고 다른 마을로 이주할 수 있도록 협상을 하자'는 파와 '폭풍과 침입을 견디며 마을을 지키자'는 파가 있었다. 마을 사람들의 논쟁 끝에, 몰래 기술을 훔쳐 마을을 떠난 사람들로 인해 프림 빌리지도 지켜지지 못하고 파괴되었다.

 

각자 뿔뿔히 흩어진 마을 사람들은 각자 레이첼이 개발한 식물 종자를 가지고 가서 식물을 심으며 언젠간 다시 만나자고 약속을 하고 헤어진다. 레이첼이 개발한 식물은 공기 중의 더스트를 줄이는 것에 아주 효과적이었고, 이를 발판삼아 지구는 다시 안정을 되찾는다.

 

- 현대 - 

다른 식물과 동물을 죽일 정도로 생명력이 높은 식물(모스바나)로 인해 살기 어렵다는 제보를 받고, 생태학자인 아영이 그 원인을 찾기 위해 식물을 조사하고 관련된 과거의 기억을 떠올린다. 이 식물은 과거에 아영이 봤던 희수 할머니가 키우는 푸른 식물과 연관이 있다.

 

아영은 모스바나를 조사하며 희수 할머니를 떠올리고, 더스트 시대를 추적하여 나오미와 아마라 그리고 프림 빌리지를 찾아낸다. 조사를 통해 알게된 사실은 과거 동시대에 모스바나의 원형으로 보이는 식물이 지구 곳곳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시작됬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프림 빌리지에 살았던 마을 사람들이 약속을 지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프림 빌리지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던 지수씨가 바로 아영이 만났던 희수 할머니이다. 

 

 

자유로운 감상

 

치명적인 재난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한 삶의 선택과 이기심으로 마을이 분열되는 것, 인간의 모든 신체를 대체하는 기계품과 살인 로봇이 존재하는 미래 픽션 기술, 황폐한 세상에서 소녀 2명인 나오미와 아마라의 생존 이야기, 레이첼과 지수씨의 오묘한 인간 관계, 아영과 희수 할머니의 과거 이야기 등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해관계와 스토리가 다양하여 집중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아 재미있게 읽었다.

 

특히 나오미와 아마라라는 2명의 어린 10대 소녀, 한 명은 내성이 없어 아픈, 이 여린 두 주인공이 피해다니는 장면의 묘사가 아주 재미있었다. 그 둘이 고문에 가까운 실험을 당하다가 도망치고 둘이 서로만을 의지한채 도망치는 장면에서 몇번이나 '헉'소리를 냈다. 사냥꾼을 만나 가진 것을 빼앗기기도 하고, 누군가를 의지했다가 배신을 당하기도 하고, 착한 사람을 만났지만 그 사람들이 죽는 비련을 겪으면서 둘이 서로를 더욱 믿고 끈끈하게 변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레이첼과 지수씨의 인물 성격과 그들의 이야기와 감정선도 섬세했다.

레이첼을 원래 사람이지만, 신체의 일부를 기계로 바꾸는 수술을 통해 로봇의 신체 98%, 인간의 신체 2%로 이루어진 기계인간이다. 그렇기 때문인지 거의 감정이 없어 보인다. 더스트를 줄이는 식물을 개발하여 사실상 인류와 지구를 구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지만, 본인은 그런 일에는 관심이 없다. 레이첼이 관심있는 것은 오로지 연구하는 식물이 전부였다. 책을 읽는 내내, 레이첼은 창백하고 고집있는 표정 변화가 없는 새침한 고양이 같은 캐릭터로 상상이 되었다. 지수씨는 근육질에 구릿빛 피부, 어깨가 넓고 미소를 잘 짓는 캐릭터로 그려졌다. 

 

지수씨는 레이첼의 기계 뇌에 있는 감정 스위치를 켰다. 레이첼은 지수씨에게 관심이 생겼다. 그 관심을 표현하는 방법도 물끄러미 쳐다 보는 등의 행동만 나타났다. 지수씨와 레이첼은 서로에게 어떤 감정이었을까.. 이 둘의 감정을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까..

 

 

 

인상적인 구절

나에게 좋은 사람이 타인에게는 아닐 수도 있다고. 어쩌면 지수 씨가 나와 레이첼에게 그런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p.193)

 

어딘가에서 들었던 말로 '세상에 사람이 10명만 존재한다고 치자. 당신이 아무리 잘해도, 열 명 중 일곱 명을 당신이 무엇을 하든 관심이 없다. 그 중 두명은 당신을 좋아하고, 나머지 한 명은 당신이 아무리 잘해도 싫어한다.' 라는 말이 생각이 났다.

 

타인에게 미움 받거나 인정받는 일이란, 종이 한 장 차이인지도 모른다. 인간은 자신이 보고 싶고, 듣고 싶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오류가 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주관적이기 때문에 틀렸다고 할 수도 없다.

 

당장에 나로서도 사람과 모임에 따라 행동하는 모습이 달라진다. 성향이나 이해관계, 아니면 이유없이 누군가가 좋아졌다가 싫어지기도 한다.

 

나는 나대로 소중하고, 당신은 당신대로 소중한 사람이다. 나에 대해 모르는 이들이 그어놓은 잣대에 상처받지 말자. 누구든 나를 좋아할 수도 있고, 미워할 수 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는 이곳에 오기 전에 많은 대안 공동체를 봤어. 모두 같은 패턴이었지. 처음에는 거창한 기치를 걸고 모여. 유토피아 공동체를 표방하거나, 종교를 중심에 두기도 하고, 사냥꾼들이 모인 집단일 때도 있고, 그도 아니면 평화로운 생존을 바라는 사람들이 모이기도 해. 모두 돔 시티 안에서는 답을 찾지 못해서, 돔 시티 밖에서 대안을 꿈꾸는 거야. 하지만 그게 뭐가 됐든 결국 무너져. 돔밖에는 대안이 없지. 그렇다고 돔 안에는 대안이 있을까? (p.226)

 

재난 상황에서는 필수불가결하게 이런 종류의 갈등이 일어난다. 모든 사람의 유토피아를 꿈꾸지만 각자가 꿈꾸는 이상적인 삶의 모습이 달라 절대 합의될 수 없는 분야인 것 같다.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유토피아로서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어서 계속해서 무언가(행복, 돈, 명예 등)를 추구하며 살아야 한다. 이상적인 무언가를 추구한다는 것은 현재의 내가 이상에 미치지 못하다는 말의 반증이기도 하다. 이상을 쫓기 위해 유토피아를 꿈꾸며 살아가지만 유토피아에 절대 닿을 수 없다. 이상에 닿기 위해 노력하며 삶의 의미를 만들어간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정말 불완전한 존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