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학년의 대학 생활 회고

지난 5년 반 동안 학교에서 해야 할 일을 모두 마치고, 졸업식만을 남겨두고 있다. 대학 시절을 다 잊기 전에, 20대 초반의 찬란했던 대학 생활을 기록해 보고자 한다.

 

🏫 2019년 - 인하대학교 컴퓨터공학과 입학

 

나는 수시로 지원할 수 있는 티켓 6개를 전부 '컴퓨터 공학'에 몰빵했다. 개발자라는 꿈을 갖게 된 계기는 단순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검은 화면에 초록색 글씨로 코드를 작성하는 개발자들이 멋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침 알파고가 등장했을 때라, 컴퓨터 분야의 전망이 좋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경쟁률을 고려해 전략적으로 지원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나는 수시 지원이 열리자마자 바로 6곳을 모두 지원했다. ㅋㅋㅋ

 

그렇게 나는 인하대학교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했다. 본가를 떠나 기숙사 생활을 시작하며 자유를 만끽했다. 대학교에는 재미있는 일이 너무 많았다. 동아리에 가면 신입생이라고 선배들이 밥과 술을 사주고, 과제가 있어도 술을 마셨고, 시험이 있어도 술을 마셨다. '1학년은 공부 안 해도 된다. 컴퓨터 공학은 학점이 중요하지 않다.'라는 선배들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1학기에 3.44 학점을 받았다. 당시에는 이 점수가 좋은지 나쁜지 감이 오지 않아서 얼떨떨하게 넘어갔다.

 

처음 들었던 전공 수업은 '객체지향 프로그래밍'이라는 C++ 과목이었다. 처음 접하는 프로그래밍이라 많이 헤맸었고, 과제를 하려고 눈물까지 흘리며 씨름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도 2학기부터는 정신을 차려서 4.28의 성적을 받았고, 그 후로도 비슷한 성적을 유지했다.

 

1학년 때는 컴퓨터공학 (개발) 동아리에 들어가서 많은 친구와 선배들을 사귀었고, 즐겁게 잘 지냈다. 처음 배우는 프로그래밍에 다른 사람들은 알아서 척척 잘하는데, 나만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아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너무 아무것도 모른다.'라고 울면서 한탄했던 기억이 있다. 

 

 

👩‍💻 2020년 - 온라인 수업 (공모전 도전)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C++만 찍먹하고 1학년을 마쳤다. 대학교 2학년이 시작될 무렵 코로나가 터졌다. 수업은 온라인으로 진행됐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본가에 있으면 계속 모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어떻게든 인천 학교 근처로 오려고 했다. 인천으로 와서 온라인 수업이지만 더 부지런하게 살기 위해 개발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했다.

 

교내 공모전에 참가해 윈도우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computer vision을 활용한 서비스로 1등을 수상했다. 짧은 기간동안 서비스를 개발하면서 엄청나게 성장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줄 알았지만, 공모전으로 용돈도 벌고, 상도 타면서 '하면 된다.'라는 자신감을 얻었다. 나의 인생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를 해봤었다. 파리바게트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며, 나의 생활비에 보탰었다. 이 경험으로 서비스직은 나와 맞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독서 소모임에 참여했는데, 이것도 매우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코로나 시기라 방에서 온라인 수업을 듣고 공부만 했고, 간혹 모임이 있더라도 원래 알던 사람들과 만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고 싶어 독서모임에 들어갔다. 다행히도 좋은 사람들을 만나, 덕분에 지성을 쌓으면서도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나는 책을 편식해서 내가 좋아하는 장르의 책만 읽는 경우가 많았는데, 모임을 하면서 철학, 고전 등의 접해 보지 못했던 어려운 책을 읽고 토론할 수 있어서 좋았다.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의견을 표현하는 연습도 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기로는 독서모임을 하기 이전에는 나와 의견이 다르면 경계를 했었는데, 독서모임을 하면서 의견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수용할 수 있는 포용력이 생겼다. 나는 학과 생활을 열심히 하는 편이라 다른 과 친구들이 많지가 않았는데, 다른 과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며 다양한 시각을 접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 2022년 - 본격적인 진로 설정 (학부연구생 & 통계학 복수 전공)

 

내 대학 생활 중 가장 중요한 결정을 했던 시기이다. 이 때의 선택으로 나의 진로가 구체화되었다.

3학년 때는 본격적으로 데이터 분야로 진로를 정하고 '통계학과'를 복수 전공했다. 데이터 쪽으로 가게 된 이유는 우선 인공지능을 관리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그동안 짧고 굵게 진행했던 개발 활동을 통해 순수 개발은 나와 맞지 않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학이 재미있었다. 그래서 통계학과를 복수전공하고 전공 수업을 들었는데, 통계학이 재미있었고 나와 잘 맞았다. 수학 개념을 이해하고 문제를 풀 때 공부를 하면 다 알 수 있는 내용이라는 것이 나의 J성향과 딱 들어맞았던 것 같다. 그래서 시험공부할 때나 과제할 때도 스트레스를 덜 받으면서 공부할 수 있었다.

 

동아리 활동과 독서 모임도 꾸준히 했다.

그리고 학부연구생을 시작했다. 이 선택으로 인해 현재의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이전에는 막연하게 '데이터 분석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만 했었다. 그러던 중, 한 전공 수업을 듣고 그 교수님의 학부연구생으로 들어가 연구를 하게 되었다. 연구실의 사람들과 교수님이 모두 좋은 분들이셔서 공부도 하고 연구도 하며 재미있게 지냈다. 학부 연구생으로 들어간 첫 학기에  논문을 읽고, 실험하고, 논문을 작성해 발표했었다. 작은 논문이긴 하지만, 학회에 가서 발표하면서 매우 뿌듯했다.

 

그리고 개발과 창업 관련 대외활동에도 참여했다. 컴퓨터공학 분야에서는 유명한 대외활동이라 열심히 준비해 합격했다. 대학교를 부분 등록으로 다니면서 열심히 배우고, 개발했다. 그때 현업에서 일하시는 멘토 분들에게 멘토링을 들으며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고, 팀으로서 일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었다. 나는 서비스에서 인공지능 개발과 데이터 파이프라인 개발을 맡았었다. 외부 업체들과 일에 대한 미칭을 하고, 내가 한 일을 팀원에게 설명하기 위해 쉬운 말로 풀어서 설명해야 하는 것을 배웠고, 의사소통에 더욱 신경을 써야겠다 배웠다. 

진로에 대한 방향성을 정하고, 많은 사람을 만나 일을 하면서 많이 힘들었지만, 인간으로서 가장 많이 발전한 한 해였다.

 

 

🗺️ 2023년 - 개구리의 바깥 구경 (교환학생)

 

이 때도 나의 인생에서 큰 변화가 일어났던 시점이다.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교환학생'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해외에 나가서 영어로 말하며 외국인 친구들을 사귀는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막상 학교를 다니다 보니 개발 공부, 학교 수업 등에 치여 교환학생 생각을 한참 미뤄두었다. 여기에는 많이 적지 못했지만 작년에는 학교 수업, 개발 프로젝트, 연구실 생활을 동시에 하며 너무 힘들어서 잠시 쉬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다가 문득 교환학생이 다시 떠올랐다. 모아둔 돈도 꽤 있고 명분있는 해외 경험을 쌓고 싶었다. 그래서 영어 성적, 서류 작성, 장학금 신청, 면접 등을 알아보며 준비를 했고, 교환학생에 합격했다.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부모님을 먼저 보내고 이것저것 수속을 마치고 비행기를 탔다. 그 전까지는 괜찮았는데, 비행기를 타니 너무 두려웠다. (나는 교환학생을 가기 전에 해외에 나가 본 경험이 없었다.) 그래서 기내식도 제대로 못 먹고, 혼자 조용히 떨었다. 다행히도 이 불안은 오스트리아에 도착하자마자 사라졌다. 막상 도착하니 한국인이 나 밖에 없고 기댈 곳이 없다는 생각에 더 여기저기 말 걸고, 뽈뽈 잘 돌아다녔다.

 

학교에서 공부도 열심히 하고, 새로 사귄 친구들과 열심히 놀고, 여행도 많이 다니며 새로운 사람들을 정말 많이 만났다. 그때 만났던 사람들이 정말 다양했었는데, 예전에 컴퓨터 개발자로 10년 넘게 일하다가 요리사로 직업을 바꾼 친구, 아프가니스탄의 정치적 난민으로 독일에 와서 힘들게 살았던 친구, 외교관으로 일하는 친구 등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외국 친구들과 살아온 이야기하며 한국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지 않으면 느끼는 불안함에서 벗어 날 수 있었다.

 

삶의 방식은 다양하고, 정답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교환학생 기간은 어디서든 살 수 있다는 자신감과 깡을 길러주었다. 나는 완벽주의에 가까워서 무언가를 제대로 하지 못했을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이제는 인생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대충 "that's a life"라며 의연하게 넘길 수 있을 만큼 성장했다. 그리고 규칙적으로 아침에 일어나 스트레칭하고, 조깅하는 멋있는 습관을 길렀다. 

 

8개월 동안 교환학생을 갔다 와서 귀국한지 일주일 후에 바로 마지막 학기가 시작되었다. 다시 한국에서의 삶에 적응하면서 열심히 살았다. 마지막 학기에는 특히 대학원 준비와 졸업 프로젝트를 집중했다. 프로젝트를 열심히 해서 학교와 회사에서 상도 받았고, 이 기회로 태국에서 열린 해커톤에 참여하는 기회를 얻어 태국 친구들과 공동 해커톤을 했었다.  마지막 학기를 유종의 미를 거두며 마무리할 수 있었다. 

 

 

👩‍🎓 2024년  - 졸업과 입학

 

원래 계획대로라면 대학원에 진학했어야 했지만, 23년도에 입시에서 미끄러져서 졸업을 한 학기 미루고 대학원 입시를 한 번 더 준비하기로 했다. 이 시기에는 조용히 성실하게 보냈다. 1월부터 3월까지는 교수님들과 컨택하고, 그 뒤에는 자소서를 쓰고, 공부하고, 면담하고.. 이 활동을 끊임없이 반복했다.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은 상태로 계속 공부하고 준비해야 하는 상태라서 불안했다. 그래서 초반에는 교수님과 이메일로 TO가 없다는 등의 거절 이메일을 받을 때마다 너무 슬펐다. 하지만 이런 일들이 반복되다 보니 은근히 무뎌졌다. (지금은 지나서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듯하다. 막상 그때의 일기장을 들여다보면, 하루하루가 우울 그 자체였다.ㅋㅋㅋㅋ)

 

결과적으로 입시는 성공적으로 잘 끝났다. 지금은 8월에 있을 대학교 졸업과 대학원 입학을 앞두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입시 과정을 거치면서 내가 배운 것은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계속 그 활동을 찾아보고, 필요한 스펙을 미리미리 준비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문을 두드려야 한다.

 

그리고 '내가 문제 있는 것이 아니라 fit이 맞지 않았을 뿐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나의 정신 건강에 좋다. 생각보다 세상의 많은 일에서 운이 많은 요소를 차지한다. 내가 대학원에 진학할때, 정부의 R&D 예산 삭감으로 대부분의 연구실이 인원을 늘리지 않아 TO가 없다고 했었다. 이러한 '운'은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니,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일에 집중을 하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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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마무리하며

최근에 컴퓨터공학과 1학년 신입생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기 위해 나의 대학 생활을 되돌아보았다. 나는 되고 싶은 이상적인 목표가 있었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었다. 다시 1학년으로 돌아가라고 해도 싫을 만큼 열심히 살았다. 졸업 학점 130학점을 훨씬 넘는 159학점을 들었고, 성적도 나쁘지 않았다. 다수의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연구 경력도 쌓았다. 대학 생활 동안 부족한 점을 채우기 위해 노력했고, 그 노력의 결실도 체감했다. 

 

20대 초반을 알차게 보내고 나서 느낀 점은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라는 것이다. 학교 강의 외에도 동아리 활동, 아르바이트, 대외 활동 등에서 열정을 가지고 했던 활동들이 나중에 블록처럼 끼워 맞춰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앞으로는 지금껏 지나온 시간들 보다 더 많은 고난이 있겠지만, 그 또한 묵묵히 잘 견뎌내서 더 멋있는 사람이 되어있을 거라는 기대가 된다.